[동아일보 14.01.21]‘때밀이 장갑’ 사장님, 전화 꺼놓은 사연은…

“이번에도 5분 만에 매진이네요. 직접 대구로 찾아가서 사야겠습니다.”

“주문이 어려워서 무작정 입금부터 했습니다.” 

최근 한 인터넷 공동구매 카페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이들이 사려는 것은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닌 단돈 5000원짜리 ‘때밀이 장갑’이다.

때밀이 장갑을 만드는 정준산업 배향섭 사장(68·사진)의 휴대전화는 넉 달째 꺼져 있다. 전화기를 켰다 하면 제품 주문 전화가 하루 200통이 넘도록 걸려와 업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도 대중이 없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수시로 벨이 울린다. 배 사장은 “밥 먹을 때, 잠잘 때 할 것 없이 전화를 받아야 했다”면서 “전화를 꺼놓을 수밖에 없어 많은 분께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전화뿐만이 아니다. 대구 달서구 본리동에 위치한 정준산업 회사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때밀이 장갑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국내 유명 백화점 관계자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개인 구매자들까지 다양하다. 

배 사장을 이토록 바쁘게 만드는 것은 때밀이 장갑 ‘때르메스’. 원래 이름은 ‘요술 때밀이 장갑’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빗댄 이름인 때르메스(에르메스+때밀이)로 더 유명하다. 

원래 섬유·장갑 공장을 운영하던 배 사장은 회사 이름이기도 한 아들 정준 씨의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요술 때밀이 장갑을 만들게 됐다.

“몸이 아픈 어머니가 목욕을 하실 때 흔히 말하는 이태리타월은 미끄럽고 까칠해서 불편해하시더라고요. 비누칠을 해도 미끄럽지 않고 자극 없이 부드럽게 밀리는 때밀이 타월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들의 특허와 어머니를 향한 효심, 그리고 제조기술이 한데 모여 아이디어 상품이 탄생한 것이다. 

요술 때밀이 장갑은 애초에 환자를 위해 제작했던 만큼 주로 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원에 납품해 왔다. 그러다 온라인상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온 듯 피부가 매끈해진다’는 평가와 함께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최근에는 일본 등 해외에서도 구매 의뢰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요술 때밀이 장갑이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자본금 3000만 원으로 시작한 정준산업은 저조한 매출과 불량품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경북테크노파크의 도움으로 지원금과 각종 강연 등의 혜택을 받았다. 정준산업을 담당했던 문영백 경북테크노파크 실장은 “당시 벤처는 대부분 정보기술(IT) 쪽에 집중돼 있었는데 때밀이 장갑은 아이디어가 참 독특했다”고 말했다.

최근 요술 때밀이 장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장갑을 모방한 유사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배 사장은 “러시아에서 수입한 목화와 자작나무 등에서 추출한 100% 천연섬유로 장갑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비슷하게 흉내를 내도 따라올 수 없다”면서 “우리 제품은 모방 상품들보다 피부 자극이 훨씬 적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 장갑이 장어나 미꾸라지 같은 어류를 잡는 횟집에서도 쓰인다”며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공급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soohyun8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