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15.11.02] ‘안 아픈 때수건’ 아이디어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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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1976년생/ 2015년 정준산업 대표(현)

때밀이장갑으로 수십억원대 연매출을 올린다니. 지난 10월 27일 대구로 내려가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찍찍’ 금속성 소음 가득한 330㎡(100평) 남짓 되는 지하공장. 직조 기계 35대가 하루 8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이곳에서 ‘때르메스’로 대박을 친 배정준 정준산업 대표(39)를 만났다. 그는 굵은 검정색 색연필로 큼지막하게 쓰인 종이 주문서 몇 다발을 내밀었다.

 

혹시나 싶어 주문서에 찍힌 연락처로 고객 여러 명에게 물어도 봤지만 “물량을 받기까지 한 달 정도 대기시간이 걸린다”며 오히려 기자를 타박했다. 의구심은 싹 사라졌다. “때밀이로 벌어봐야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더군다나 시중에 파는 것보다 수십 배 비싼데 과연 누가 살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부친께서 ‘제품화하면 분명히 될 것 같다’며 절 독려하셨지요.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은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시작은 단출했다. 기계설비학과 대학생이던 1998년 배 대표는 우연히 교내에 붙은 중소기업청 주관 ‘창업경연대회’ 공고를 접했다. 대박 아이템을 궁리하느라 뜬 눈을 지새우던 배 대표에게 문득 떠오른 건 수년 전 92세로 별세한 할머니. 당시 아버지 배향섭 사장이 거친 때밀이 타월로 할머니를 목욕시킬 때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고생스러워 했던 경험이 발명의 단초가 됐다. 

▶‘써보니 좋더라’ 입소문만으로 불티나게 팔려 

원리는 간단하다. 힘들이지 않고도 피부 각질을 벗겨내기 쉽게 러시아산 자작나무로 만든 천연섬유를 썼다. 머리카락 굵기 30분의 1로 뽑아낸 극세사를 꼰 뒤, 꼬인 극세사끼리 다시 꼰다. 이렇게 하면 물에 닿더라도 쫀쫀한 탄성이 오래 유지된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30가닥을 150번 꼬아 만든 때장갑으로 1998년 창업경연대회에서 대구·경북 지역 1등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경진대회 1등에 오른 뒤 경북테크노파크에 입주해 지금의 정준산업을 차렸다. 

정준산업의 때밀이는 양손 한 세트 6000원으로 일반 때수건의 30배다. 시작이 순탄했을 리 없다. 

“첫 구매자는 간병인들 목욕에 필요하다며 사간 한 수녀님이었어요. 덜 아픈 목욕용품이 필요했던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지요. 일부 미용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도 긍정적인 후기글이 줄을 이으면서 비로소 판로가 뚫렸어요.” 

미국, 중국 등 교포사회로도 소문이 퍼지면서 새벽에도 판매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렇게 하루 5~6개 팔던 게 지금은 월 20만개 생산해 연매출 60억원에 달한다. 

복병은 ‘짝퉁’이다. 직간접적으로 정준산업을 거쳐간 이들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인터넷쇼핑몰에다 버젓이 올렸다. 진행 중인 소송만 6건. 배 대표는 “민사소송은 결론나는 데만 최소 몇 년이 걸린다.

 보다 못해 27개 인터넷쇼핑몰에 도의적인 책임감을 갖고 장사를 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는데 그중 8개 업체가 못 팔게 하겠다고 답신을 해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내년 상반기 중 또 다른 ‘비장의 무기’도 내놓는다. 손에 달라붙지 않고 땀이 나도 잘 벗겨지는 고무장갑이란다. 

“발명을 거창하고 어려운 걸로만 접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일상생활의 사소한 불편에 착안한 아이디어 제품을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 사진 : 김성중 기자]